[2030콘서트]'민주화'의 종언
2030콘서트 2012/05/24 10:02 |통합진보당 사태가 검찰수사를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입장발표를 통해 ‘야권 단일화 관련 여론조작 의혹’ ‘핵심 인사들의 각종 금품 관련 의혹’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 ‘야권 단일화 관련 여론조작 의혹’ 등을 수사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이로써 통합진보당 사태의 ‘정치적 해결’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사태는 어쩌면 통합진보당의 탄생에서부터 예견돼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한번 커다란 충돌과 분리를 겪었던 두 세력과, 이 두 세력에 표를 주는 것을 “사표”라고 주장했던 이를 중심으로 하는 세력이 선거를 위해서 ‘급만남’을 가진 정당이니 말이다. 놀라운 지점은 그 파열이 벌어지는 시점과 양상이지, 파열 자체는 아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폭력 사태와 그 이후에 벌어진 사퇴거부 러시를 보고 있자면, 밀려드는 황당함과 허망함까지를 막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 사태는 단지 통합진보당의 미래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지난 4·11총선에서부터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의 ‘민주화’라는 하나의 역사가 닫히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1987년 이후로 끊임없이 자행되어온 ‘민주화’의 ‘사유화’가 있다. 가령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민주화세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은연중에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겨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끊임없이 자랑하고 과시했다. 논공행상을 거행하고,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았다. 덕분에 이들은 자신이 사회의 어엿한 주류이자 기성세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스스로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 이들을 악독한 사장님으로, 체벌하는 선생님으로, 부패한 정치인으로, 권위주의적인 어른으로, 가부장적인 남성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들의 수많은 민주주의는 이들의 세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정치라고 사정이 딱히 다르지는 않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이번 사태다. 우리 앞에서는 이제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정당에 부재하는 ‘민주주의’와 ‘정치’라는 역설만이 던져져 있다. 경기동부를 비롯한 구당권파들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그 어떤 결과를 무릅쓰고서라도 존재해야만 한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을 위해 어떤 설득과 소통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대신 조직의 힘으로 장악했다.
많은 시간 동안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극우반공세력과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자신들의 정당성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정당에 투표한 유권자들에게 들려줄 적합한 대답이 결코 아니다. 이들은 진보정치와, 그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진보운동진영이 쌓아올린 여러 가지 성취와 미덕들을, 오로지 자신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한순간에 말아먹었다. 적어도 정당정치라는 게임에 참가하고자 했다면,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상식정도는 판돈으로 지참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의 룰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의 근간이 되는 대중의 목소리도 무시했다. 여기에는 이미 정치가 없다. 다만 추하게 말라붙은 이념과 괴물이 되어버린 조직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역사적 서사로서의 ‘민주화’는 그것이 표방하는 민주주의가 더 이상 밖을 향하지 않을 때 멈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어떤 한계지점이다.
민주화로부터 추동되었던 힘은 몇몇 전유자들에 의해 ‘그들만의 역사’로 쪼그라들었다. 대중의 새로운 열망들을 담을 그릇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박정희와 노무현, 안철수와 박근혜 같은 어긋난 대립들이 빈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새로운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손에 들고 있는 한줌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서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진보는 과감하게 바깥을 향해야 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야 한다. 잔치는 끝났다. 더 크고 어려운 싸움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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